싸이어리 7,6,5월
2014.07.04 금
불안을 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뭔가를 할 때 어떤 태도와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할까. 내가 당장에 받아들일 수 있는 사실은 나 혼자 어떻게 한다고 해서 뭐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얼만큼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가에 대해서 생각할 때 나는 늘 나의 주장에 얼마나 논리적으로 타당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가가 그 척도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논리적이고 타당한 이유를 뒷받침한다 할지라도 이는 때때로 아주 무능해진다. 실제로 내 주장이 무능하다는 논리적이고 타당한 이유가 반대편에 버티고 서 있을 때가 있고, 또 하나는 사람이란게 보고자 하는 것만 보고, 듣고자 하는 것만 듣는 기질이 발동될 때이다. (물론 나도 그렇다.)
그래서 이제는 논리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논리로 무장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며 내가 보는 세상을 상대방 또한 보고싶게 하고, 듣고싶게 만들어야 하는 능력까지 갖추어야 한다. 어쨌든 타협을 포기하거나 세뇌당하는 상황보다는 설득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내가 설득을 하든, 당하든 어느 쪽이든 좋다. 어느 쪽이든 그 쪽이 정말로 타당하다고 생각하면서 뭔가를 해나가고 싶다.
2014.06.22 일
어릴때 집에서 듣던 빗소리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비가 무성한 나뭇잎에 떨어지는 소리는 더 연하고 싱그럽다. 그 땐 비가 내리면 창문으로 쪼르르 가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는 창 밖으로 사진도 찍고 빗소리도 녹음하고 팔을 뻗어서 비를 만지곤 했다. 비는 모든걸 진하게 한다는 걸 오감으로 느꼈다. 흙내음, 풀내음을 진하게 하고 공중의 투명함도 진해진다. 무엇보다 비내리던 다른 날들의 기억을 진하게 했더랬다.
2014.06.20 금
정말 오랜만에 머리 속에 이미지가 먼저 떠올라서 그림을 그리고싶은 현상을 겪고있다. 어릴 적에. 그러니까 내가 크면 그림그려서 먹고살겠지. 라는 생각에 일말의 의심도 하지 못하던 시절에는 늘 이런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머리에 떠오른 느낌과 형태들을 백지 위에 100% 옮겨놓고 싶어했고, 그래서 매일매일 드로잉 연습하던 시절이다. 거의 십년만에 그런 느낌 들어서 기분이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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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보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 중에 하나가 뭐였냐면, 사만다가 OS로써 고민하는 생각들이 인간이라고 해서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냥 인간대 인간으로 느끼는 문제랑 똑같다. 우리는 모두 닿고 싶어도 닿을 수가 없는 존재들이다.
2014.05.27 화
눈 앞에 닥치는대로 해보고, 사람도 만나지는대로 다 만났던 건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대로, 호기심이 이끄는대로 손 뻗어가며 살았다. 물론 앞으로도 쭉 그렇게 살 생각이다. 단지 이제는 겪어본 것들이 이전보다 많아졌고 그래서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생긴다. 아마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보다 뻔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게 더 많아지는 것이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이리라. 그런만큼 나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눈으로 모든걸 다시 바라보고싶다.
그 어떤 상황이여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시기였으리라. 이제 모든 일이, 모든 사람이 나한테 다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잡는다. 이전엔 전부 다 괜찮고, 아무래도 상관없다면서 받아들였던 시기였다면, 이제는 거르는 과정을 겪어나가고있는 것 같다. 용납이 되고 안 되는 것들이 분명해지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도 차츰 자리를 잡아간다. 버려도 되는 것, 버려야만 하는 것을 버리는 것도 하나의 용기라 했다. 버리고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 뭔가 새로운 것들을 다시 흡수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타성에 푹 젖은 나를 다시 바짝 말려야지. 다시 새롭게 중심을 잡자. 눈 앞에 주어지는 것을 손에 쥐기보다는 원하는 것들을 찾아서 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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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좀 밸런스가 맞아가는 것 같다. 몇 달 조용히 혼자 지내면서 버릴 것들을 많이 개워냈고 제법 멀끔한 정신과 감정상태가 되었다. 그런 상태로 나를 되돌아보니 얼마나 정신없고 어지러운 상태였는지 그 때의 내가 가엾을 정도다. 여전히 끈기와 인내가 부족하지만 집중력을 유지할 환경을 구축하니 어쨌든 해야할 일들을 하고있다. 확실히 내적으로 정돈된 느낌이 든다. 조금씩 나아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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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지금까지 쭉 절대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은,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다정한 인간이고 싶지 만만한 인간은 되고싶지 않다. 대체로 누군가에게 한 번 만만해보이기 시작하면 경고해도 별로 소용이 없다. 그 땐 만만하게 보인 내 태도보다 만만하게 보는 상대방 태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 지경이 되면 난 더 이상 상종하지 않는다. 버려야 하는 관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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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하고도 견고한 사람이 되자.
2014.05.21 수
늘 선택의 폭이 너무 넓은게 문제다. 생각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이유는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판단능력을 키우는 건 몸소 경험하는 것 뿐이다. 그것이 유일하게 내가 확실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한다. 뛰어들자 뛰어들어. 직접 두 발로 뛰고, 직접 보고, 만지고, 그 세계의 공기를 들이마셔야 한다. 먼 발치서 간 보면서 구경만 한 것 같다
2014.05.18 일
본질이든 진실이든 보고자하는 사람에게 보이고,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찾아진다.
본질과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어디로부터 보고 또 찾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가.
그런 사람들이 어떤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
2014.05.16 금
작년까지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만나면서 배운게 많은 것 같다. 26년동안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굴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일을 자제하고 피하는데 노력했다. 인류애인지 호기심이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걸고 수천수만번의 '설마'와 '혹시나'로 믿음을 붙잡으며 지내왔으나 그에 비례한 수천수만번의 '역시나'의 결론을 얻었다. 이제는 사람을 가려서 만나고, 만났던 사람도 거른다. 여기에 이제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삶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을 행복하게 꾸려나가는데 내 주변사람들은 정말 중요한 존재다. 특히 쉽게 흔들리고 영향받는 성향을 가진 나로써는 더 그렇다. 나를 웃게 할 사람들을 만나자.
2014.05.11 일
어제는 기분좋았다. 청춘영화같은 시간이였다. 강바람 맞으며 취하고. 웃고. 달리고. 노래하고.
2014.05.08 목
더 만족하면서 살 수 있는 현실을 맞이하려면 제일 먼저 내가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 주변 탓, 환경 탓 해봤지만 내가 바뀌지 않는 이상 이 주변이란 건 결코 바뀌지가 않는다. 어떻게 내가 나 자신을 성장시킬 것이며 그 과정에서 어떤 가치를 가장 우선순위로 둘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더 필요하다. 어쨌거나 같은 방식으로 반복하고 있지는 않다. 이렇게 저렇게 하다보면 나오겠지. 지금도 내 방식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들을 보면 그렇게 오래 걸려서, 이런 저런 꼬라지들 다 보고나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어느 쪽에 더 집중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어떤 경험들에 부딪혔고 어떻게 넘겨왔느냐가 관건이다. 운 좋은 기회들과는 거리가 먼 삶이였고, 이걸 인정하게 되기까지도 얼마나 많은 불운을 맞이하고서야 가능했는가. 시간을 들이고 또 돌고 돌아보자. 그럼 또 답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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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나 자신을 완벽하게 배려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제 어느정도는 가능해졌다. 대신 타인은 덜 배려하는 사람이 되었다. 설명을 하자면, 내가 덜 배려하고 이기적으로 굴었을 때 상대방에게 얼만큼의 영향력을 끼칠 것인가- 에 대한 무게는 재면서 덜 배려한다. 상대와 나의 상태를 읽어가며 배려하려고 한다 요즘은. 절실한 쪽을 배려하자. 어느쪽이 더 참을만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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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나서 하하호호 기분좋은 시간 보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비죽거리는게 얼마나 오래되었나 싶다. 이제는 그런게 휘둘리는 기분으로 다가오는 때도 있다.
2014.05.02 금
Keep it real.
2014.05.01 목
'넌 필요한 사람들을 지켜나가면서 외롭지 않게 늙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었는데 요즘의 널 보면 외로움을 즐기게 될 것 같아.' 라는 소리를 들었다. 모르겠다 난. 확실히 언젠가서부터 함께 지내는 것을 담보로 너무 많은 값을 치뤄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친구든 남자든 너무 가깝게 지내는 것이 지겹고 신물나고. 뭐 그랬었다. 최근에는 완전한 고립에서는 좀 빠져나온 상태이다.
아무튼. 외로운 것도 순간이고 외롭지 않은 것도 순간이다. 함께여서 좋은 것도 순간이고 함께여서 괴로운 것도 순간이다. 어떤 순간이 더 참을만한가의 문제로 볼 것인지, 어떤 순간이 정말 행복한가의 문제로 볼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관계'에 대해서 더 이상 깊게 고민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답도 안나온다. 확실해진 것은 이제 참지 않는다는 것이다. 별로 내키지 않은 사람과 시간보내는 걸 참지 않는다. 더 이상 '혹시나'하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누구랑 관계를 끊었다고 해서 나중에 아쉬워하거나 후회하는 순간이 절대 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되었다. 반대의 경우가 훨씬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