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포장마차 천막을 타고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한동안 별로 술같지도 않은 맥주만 마시다가 정말 오랜만에 술을 잔에 따라 마신 날이다. 술병 입구가 잔에 닿았다 말았다 하며 쨍글쨍글 나는 소리가 달가웠다. 회사니 연애니 속시끄러운 일들로 친구는 요즘 일상이 조금 버거워보였다. 요즘은 타인에 대한 마음이 꽤나 너그러워진 시기여서 그 애를 위로해줄 수 있음에 다행이라 여겨지는 밤이였다.
나는 주변 환경을 어느정도 컨트롤할 수 있는 상황을 선택하면서 다시 매우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라는 것이 그렇게 심플하고 평화롭지는 않다. 모든 것이 나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 불만은 없으나 그만큼의 불안을 안고 가는 중이다. 그러나 꼴에 자존심인지 자존감인지 뭐 그런 비슷한 것이 속에 너무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는지 실은 내키는대로 불안해하거나 징징대고 싶지 않기도 하다. 아무튼 그래서 요즘은 테이블에 술병을 놓고도 그 자리에 마땅히 어울릴 하소연도 무엇도 소리를 낼 수가 없다. 속에 말이 없는 것은 간편하고 평화로울 줄 알았으나 괴상한 소외감이 든다. 아껴야 할 말 조차 없다니. 소통할 그 무엇도 없다니.
앞으로도 외로운 싸움이 될 것이다.
#2
아침에 집을 나서고 나서야 오늘 비가 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산은 없었고 우산을 살 생각도 없었다. 아 얼마전에 우산을 잃어버렸는데. 하는 생각만 잠깐 스쳤다. 저녁에 약속장소로 향할 때 비가 조금씩 떨어지더니 술을 마실 때는 잔뜩 내렸고 지하철역에 내려 집에 가려니 여전히 잔뜩 내리고 있었다. 겉옷에 달려있던 후드도 쓰고 가방 속에 구겨져 있던 스카프도 얼굴에 둘둘 감으며 젖지 말라고 무장을 했다. 덕분에 별 망설임없이 빗속으로 발을 내딛어 집으로 향해 걸었다. 반쯤 왔을 쯤에는 비가 이렇게 오는데 뛰지도 않고 걷는 걸 보니 날씨가 그리 춥지 않구나 싶었다. 사실 비도 그렇게 엄청 내리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젖기엔 충분했다. 그 쯤에서 비를 맞기로 했다. 후드도 벗고 걸음도 늦췄다. 가로등 아래서만 보이는 밤 비를 보니 그가 또 달가웠다. 비가 쉴새없이 눈꺼풀을 때리는 바람에 움찔거리는 내 얼굴은 조금 우스운 모양이였을 것이나 속눈썹에 걸린 빗방울이 시야에 빛들을 번지게 했다. 비를 맞기에 완벽한 날씨와 가로등 빛과 차림이였다.
이런 날이 얼마나 오랜만에 찾아온 날인가 싶었다. 이렇게 얼굴로 비를 맞는 것이. 그런 순간들 하나하나가 감정선에 너무 무겁지는 않게 닿아 행복을 느끼는 것이.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며 다시 한번 만족스러운 순간을 만끽하고 글로 옮겨 적어야 겠다 하고 들뜬 마음을 가진 것이. 이게 얼마나 오랜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