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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회고날들/1 년이 지남 2019. 12. 11. 09:24
(2018. 1. 1. 22:34)
2017년은 1년을 고스란히 호주에서 생활을 하면서 지역이동도 많이 하고 정말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한 한해여서 회고를 해보고자 한다.
상반기 _세컨비자 연장
2016년, 여름 한국에서 호주 멜번으로 떨어져서 2017 초까지 멜번에 있었다. 해외취업을 목표로 왔는데 이렇다 할 성과없이 워홀 비자기간이 반정도 밖에 남지않아서 마음이 조급했다. 연말 연초에는 채용광고가 많이 뜨지 않아서 올라오는 거의 모든 UX 디자인 포지션에 어플라이를 하고 있었고 가뭄에 콩나듯 인터뷰도 봤었지만 계속 광탈하고 있었던 상황.
3월은 되어야 다시 채용기간이 돌아올 것 같았고 그 때가서 채용된다는 확신도 없을 뿐더러 채용과 함께 바로 취업비자를 받는 건 현실적으로 정말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생활비도 바닥이 나고있었다. 그래서 처음 해외취업을 목표로 호주로 올 때는 옵션에 있지도 않았던 세컨비자를 따기로 마음 먹었다. 농장이나 공장같은 1차 산업에서 3개월 이상 근무하는 것이 비자신청 조건이기 때문에 힘든 것도 알고 있을 뿐더러 중간에 사기를 치는 컨트렉터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쉽게 방향을 틀기가 힘들었다. 법적으로는 3개월 이상의 일한 기록이 있으면 된다고 하지만 막상 대기시간있거나 일을 꾸준히 하는 것도 힘들어서 5-6개월정도 시간을 투자하는 게 보통이라고해서 정말 가는게 맞는걸까 고민을 많이 했다.
나름대로 세컨비자를 따는동안 다음 스텝에 도움이 되는 시간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몇가지 최소기준을 세워놓고 세컨비자 잡을 알아봤다. 3개월치 생활비 세이빙이 가능할 것, 4개월 안에 끝낼 것, 위험하지 않을 것, 와이파이가 되는 숙소가 가능한 곳이였다. 모든 기준을 다 충족하긴 좀 힘들겠다 싶기도 했지만 나는 발품팔면 무조건 찾을 수 있다는 주의라서 열심히 찾아보고 여기저기 수소문도 했다.
나름 모든 조건을 충족해서 6개월치 생활비 세이빙하고, 딱 4개월만에 다친 곳 없이 끝냈고, 일하는동안 사는 집도 동네도 쾌적했다. 이렇게 말하면 꿀 빨고 나온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고 내 인생 중 가장 엿같은 4개월이였다. 하루하루 언제 끝나나 손을 꼽아가며 힘든 나날을 보냈고 한국도 너무 가고싶었다. 단순반복노동은 이게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본 일이 될 것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마음맞는 친구들 없이 생활했던 것. 같은 집에 남자애들이 많이 살았는데 너무 misogynic한 발언들을 밥먹듯이 하는 애들이였고 매 주말마다 거실에서 술먹고 파티하는 통에 스트레스가 심했다. 이런게 싫어서 한국을 떠나왔는데 호주까지 와서 또 마주하고 있다니 결국 이런 환경에 내 발로 또 들어온 내 자신이 한심하고 그랬던 듯. (그렇지만 미개한 호주사람도 엄청 많음..) 시발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여기에 있어야 하나 하면서도 한국 돌아가면 평생 이런거 마주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오기로 버틴 것 같다.
근데 결국 다른집으로 이사하고 마지막 한달 즈음에는 새로 이사 온 친구들과 마음이 잘 맞아서 잘 놀러다니면서 지낸거 보면 사실 그렇게까지 생각할 건 아니였지만 이래저래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다 지치고 힘든 시기였다. ㅡ그래도 마지막 시기엔 근교로 여행도 다니고 밤에 기타들고 공원가서 노래하고, 춤추고, 별보러 다니고. 뭔가 웃기기도 하고 낭만적이기도 한 기억될 날들이 조금씩 있었다.ㅡ
아무튼 그렇게 지치고 힘들게 근무일수 88일을 되면 세컨비자를 신청할 수 있는데 비자신청서에 정말 딱 88일 적어서 냈다. 보통은 넉넉하게 1-2주정도 더 일한다고 하는데 단 하루도 더 있기 싫었음. 서류 받자마자 시드니로 이사준비를 했다.
하반기 _시드니로 이사. 해외 취업
이 때 만나던 남자랑 너무 안 좋게 헤어져서 정말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인간이...? 하고 뇌가 다친 느낌이였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싫어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긴거 자체가 너무 인생에 오점이다. 닝겐 진짜 가지가지고 넓은 세상으로 나오니 그 미친 정도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은 것임.
다행히 다른 일들은 마치 위로라도 하듯 다 잘 풀리기 시작했다. 렌트도 싸고 아늑한 독방을 아는 사람이 넘겨줘서 따로 집을 알아볼 필요 없이 바로 이사를 할 수 있었고, 전에 살던 집주인 오빠가 마침 시드니에 볼일이 있다며 차로 집 앞까지 이삿짐을 옮겨줬다.
시드니로의 이사는 호주에서 세번째 지역이동이였다. 만난 사람들 또 다 뒤로하고 혼자 덩그러니 왔으니 인프라를 다시 쌓아야 했고 (몇 번 째냐..) 인적 네트워크가 나에게는 가장 1순위였다.(걍 친구가 필요했음) 집 근처 호주교회에서 무료 영어수업을 해줘서 매일 아침 영어 수업을 나갔고, 첫 주에만 ux 디자인 관련 meet up을 세 번이나 갔던 것 같다. 옛날에 ux 디자이너로 시드니에서 취업에 성공한 분의 블로그를 보고 메일로 연락을 했던 적이 있는데 다시 연락을 해서 만나기도 했고, 해외취업을 목표로 하는 디자이너들이 모여있는 카카오 단톡방에서 시드니에 사는 사람들도 만났다.
그렇게 아는사람을 늘리고 또 그 아는사람의 아는사람을 소개받고 하면서 시드니로 이사한지 2주만에 디자이너로 일을 하게되었다!!! 해피엔딩~ 하면 좋겠지만 인생 쉽지 않음. ㅇㅇ. 그 회사는 한국회사였고 3개월 계약직으로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고 일했다. 하지만 호주 경력이 없는 나에게는 좋은 발판이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기에 감지덕지 당장 시작했다. 이커머스 위주의 웹과 컨텐츠 디자인 업무를 주로 했고 회사에 한국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여서 종종 영어로 일하는 것도 살짝 경험할 수 있었다. 한국회사였지만 내가 한국에서 일했던 회사들보다는 괜찮은 근무환경이여서 만족스럽게 다녔다.
그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은 본격적으로 업계쪽 네트워크를 늘리기 위해서 UX 관련 meet up을 제법 챙겨 나갔는데, 당시 패기가 넘쳤던 나는 모임에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을 많이 걸었다. 부족한 영어로 물어봐도 잘 들어주고 이야기에 껴줘서 즐거웠다. 그렇게 한마디라도 나눴던 사람들에게는 모임 이후에 링크드인으로 친구추가를 했는데 그러던 중에 인터뷰 기회도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만난 한 디자인 에이전시 대표와 팀 면접/ 디자인 프로세스 프레젠테이션을 가지고 이후에 사전과제, 교육자료들을 공유받으면서 채용이 눈 앞에 왔다고 생각했던 기회도 있었는데, 역시 인생은 쉽지 않아. 내부 사정으로 엄청 질질 끌다가 흐지부지 되었다. 지금 보니 주고받은 이메일이 40통이 넘고 예정된 프로젝트에 껴있는 팀원들까지 다 소개받은 상태였는데 그렇게 됐다. 인생.. 그렇게 그 회사 입사에 매달리면서 과제한다고 맥북도 덜컥 사버렸는데(스케치를 써야했음) 내 3개월 계약기간도 다 되어서 8월 말부터는 백수가 되었다 ^_^.. 세컨비자를 따지 않았으면 이대로 한국에 돌아가야 했겠지.
백수가 된 이후로 소중한 맥북을 안고 매일 집 근처 도서관과 카페를 전전하며 이력서를 넣고 인터뷰를 연습했다. 그러던 중 해외 디자이너 단톡방에서 만난 친구(Y)가 연신 "대박! 대박!"을 외치면서 나에게 진짜 대박인 소식을 전해주었다. 본인이 최근에 입사한 회사에 디자이너 포지션에 공석이 생겼고 본인이 나를 추천했다는 것이다. 이전에 내 이력서나 포트폴리오에 피드백도 부탁했었고 디자인 이야기도 종종 했던 친구라 내 디자인 경력이나 작업물에 대한 정보가 있었기에 바로 나에 대해서 언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당연히 긴장반 설렘반의 마음으로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냈고 일주일 후에 인터뷰가 잡혔다. 인터뷰 전날 새벽까지 대답을 고쳐가며 연습했고 당일에는 블로그 통해 만난 친구(J)가 파워포즈 하고 들어가라고 링크를 보내주어서 회사 문 앞에서 허리춤에 손 뙇 얹고 파워포즈도 하고 들어갔다. 껄껄. 인터뷰는 크리에이티브 서비스 팀의 프로젝트 매니저와 COO 둘이서 나를 인터뷰했다. 모든 질문에 최대한 솔직하게 대답했고(단점까지도) 포트폴리오 프레젠테이션 할 때 가장 자신있게 했던 것 같다. 인터뷰 직후의 기분은 후회없음 이였다. 인터뷰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좋은 기회도 못 잡는다면 난 한국에 가야해..라고 생각했는데, 인터뷰가 끝나고 나니 여기 떨어지더라도 조금만 더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합격 전화를 받고 바로 3일 뒤 부터 출근이 확정되었다. 이 모든 일이 2주도 안되는 사이에 일어났다. 백수생활을 2주도 안하다니 대책없이 일을 관두기부터 시작하는 나에게는 너무 짧은 백수기간이였음. 나중에 들었는데 COO는 다른 applicants 들을 더 받아볼 계획이였는데 나와의 인터뷰 후에 그냥 채용을 확정짓고 다른 applicants를 받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아직도 믿기지 않음)
첫 출근 이후로 한 달 정도 영어 때문에 압박이 너무 심했다. 일대일로 이야기하는건 괜찮은데 미팅들어가서 여러명이서 말하기 시작하면 못 알아 듣겠는 것. 퇴근 후에 매일 집 앞 카페에 가서 회의 준비하고 영어공부하고 그랬다. 의견은 있는데 말을 못하니 너무 힘들었다. 이 때 너무 열심히 살아서 살 빠지고 날씬해졌었다. (지금 다시 찜)
회사가 자체 플랫폼 서비스를 가지고 있고, 에이전시처럼 클라이언트 일도 있는 좀 독특한 시스템을 가진 회사여서 내가 원하던 UX/UI 디자인과 그래픽 디자인에 가까운 일이 적당히 번갈아가며 있다. 대체로 UX나 서비스 디자인이 내가 항상 하고싶은 일이고 또 잘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호흡이 긴 작업들이여서 마치고 나면 진이 다 빠지고 슬럼프같은 시기가 오는데 이 때 그래픽 디자인을 하면 뭔가 뇌가 조금 쉬면서도 완전히 놓아버리진 않아서 좋은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래픽 디자인 텀이 좀 길어지면 지루해져서 현타가 온다.
그렇게 수습기간 3개월을 마치는 시점에서 회사가 갑자기 미국의 다른 회사로 인수가 되었는데, 뭐가 엄청 많이 바뀌진 않는 것 같지만 UX 관련 업무가 갑자기 줄어든 느낌라 좀 아쉽다. 인수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뭐가 어떻게 바뀔지 다들 잘 모른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한해가 끝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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