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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실에 앉아 햇살 받으며 망고를 먹으니 기분이 좋다. 요즘 망고가 달달하니 맛있어서 자주 사먹는다. 오늘 창 밖으로 보는 날씨는 화창하니 볼 만 한데 막상 나가면 바람이 정신없이 분다. 마땅히 나가 놀 것도 없지만 더 집에만 있게되는 주말이다.
요즘 근황은 이래저래 만족스럽지가 않다. 그래서 이렇게 작지만 기분좋은 순간들이 더 감사한 요즘이다. 굳이 따지고 들면 먹고 살기엔 딱히 부족한 것도 없고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없는데 너무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다. 살다보니 기준이 높아져서 집이나 직장같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들이 맘에 들지 않아 요즘 디폴트 기분이 불만족스러움인데, 차근차근 해나가지 못하고 좀 우왕좌왕.. 뭐 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정신이 없다. (위염과 환절기 비염에 골골대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고..) 아무튼 정리를 한다고 정리가 되는 생각들이 아닌 것 같다. 빨리 우선순위를 정하고 집중해서 빡쎄게 행동으로 옮겨야하는데 말만하고 실천이 잘 안되어서 답답. 이 소리도 맨날 하는 것 같다. 흑..
#2
요즘 불만족스러운 기분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요소 중 하나는 정말 행복하게 잘 살고있던 집에서 이사를 나오게 된 것이다. 그 공간에서 정말 너무너무 행복하고 정돈된 일상을 보내고 있었는데 쉐어메이트 사정으로 이사를 나오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도 엄청 화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지금 살고있는 곳은 크게 불편하진 않지만 딱히 행복감을 주는 곳도 아니다. 사는 공간이 삶의 질과 내 행동패턴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주고있구나 다시 한 번 느낀다. 지금 사는 곳에서도 만약 혼자 살았다면 나름 잘 정돈해놓고 만족스럽게 살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쉐어메이트랑 같이 살다보니 그것도 쉽지 않다. 혼자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일상을 온전히 컨트롤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2-2
'나 혼자 산다'에 2PM 우영이 나왔다길래
(우리집 역주행으로 2PM에 입덕한 나는 헐레벌떡)간만에 한국예능을 찾아서 봤다. 그냥 귀여운 사람인줄 알았는데 의외의 모습이 있어서 아주 즐겁게 시청했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로 공간과 시간을 채우면서 일상을 알차게 채우며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렇게 하는게 정말 자신을 돌보고 잘 관리하는건데 그동안 자신에게 정말 무심했었다고 말 한 부분에서 많이 공감했다.스스로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꾸려야 본인이 행복하고 기분 좋은지 잘 알고있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행복의 중심이 자기자신에게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것 같아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패널들도 저 사람 정말 행복하게 사는구나! 하면서 다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살림이 이런 것들의 기본 베이스라는 것도 잘 알고있는 사람인 것 같아서 동질감 느끼고 너무 재밌게 봤다.
'나 이럴 때 정말 기분이 좋구나'를 느낄 때마다 얼마나 신나고 즐거운지 안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탐색하고, 말을 거는 과정을 반복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행복한 자기자신의 일상을 화면을 통해 보는 것도 무척 즐거웠을 것 같다.
나도 혼자 산지 이제 4년이 넘었는데, 이전 집에 살면서 비로소 내가 내 일상과 생활을 정돈하고 스스로 챙기는 감각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그로부터 어떤 보상이 돌아오는지 느꼈다.
근데 환경이 정말 중요한 게, 내가 스스로를 돌보는 액션을 취했을 때 노력만큼의 만족감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 다음에 같은 액션을 취할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는다. 열심히 청소하고 정돈한 공간에서 똑같은 재즈 음악을 틀어놓고 똑같이 향긋한 차를 우려내서 마신다 한들, 창밖으로 노을이 지는 집과 아파트가 가까이 보이는 집이 주는 만족감은 하늘과 땅 차이다.
깨끗하고 넓은 집, 맛있는 음식, 좋은 음악도 중요하지만 나에게 위로가 되고 회복이 되는 결정적인 순간은 자연이 가깝게 있을 때다. 이전 집에서는 방이 통유리창이여서 퇴근하고 음악들으면서 멍하니 노을이 지는 모습보는 것이 큰 행복이였다. 주말 아침에 토스트를 만들어 먹으면서 거실 테라스 밖으로 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시간도 너무너무 좋았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도 퇴근길 버스 안에서 멍하니 바라보던 노을이나 비오던 날 진하게 올라오던 풀냄새, 나무 사이로 동그랗게 떨어지는 햇볕같은 것들을 오감으로 진하게 느꼈고, 여행을 가도 늘 감동이 전해지는 순간들은 자연과 교감할 때이다. 이런 생각하면 이사를 좀 외곽으로 나가야하나..
확실히 지금 사는 곳에서는 꼭 필요한 살림만 하고 나를 즐겁게 하는 행동들은 많이 줄었다. 독서량도 줄고 음악도 덜 듣는다. 자연과 교감하는 지점이 없어서 시너지가 안난다. 꼭 필요한 살림만 하면서 지내니 나 자신도 최소한으로만 챙기는 느낌이다. 나는 나한테 이거보다 더 잘해주고 싶다. 휴.. 돈을 열심히 벌어야지. (결론이..)
#3
트위터를 보다가 '에브리마인드'라는 심리상담센터가 논란이 되어있는걸 봤다. 퀴어프랜들리,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상담센터로 마케팅을 하는 곳인데 대표가 그에 반하는 언행과 태도로 상담센터를 운영한다는 것 같았다. 논란은 그걸로 시작이 되었지만 여러가지로 센터 대표 인성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이 좀 있는 것 같다. 그냥 흔한 트위터식 물어뜯기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쎄했던 느낌이 표면 위로 올라왔다.
난 에브리마인드를 통해서 상담을 1년 가까이 받았었는데 상담선생님께는 무척 많은 도움을 받았고 말로 다 못할 감사함이 있지만 대표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받았었다. 대표가 직접 내담자들의 예약을 잡고 운영하는데 그 과정에서 몇 번 불쾌함을 느낀 일이 있었다. 공식적으로 안내하는 내용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부분에서 다른 부분이 있어서 일단 일처리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있었고, 마케팅하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너무 장사하는 느낌을 받아서 당황스러웠던 적도 있다. 그 사람 트위터나 '서늘한 여름밤' 웹툰을 보면서도 종종 헉 할 정도로 공감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거부감도 있었다. 웹툰 초반에는 정말 재밌게 봤고 심리상담 관련 정보를 얻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는데, 아무래도 발언의 양이 많아지다 보니 이런저런 면을 볼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적어놓고보니 생각보다 좋지않은 신호를 여기저기서 많이 받았네.
뭐랄까, 본인이 원하고 요구하는 존중의 기준들이 자기자신만은 피해가는 것 같은 느낌이였다. 그게 앞뒤가 다른 이중적인 모습으로 보여지기도 하고, 존중을 요구하는 표현방식에서도 존중이 결여된 느낌이여서 아이러니하고 공감이 잘 안갔다. 타인을 쉽게 자기 아래로 취급한다고 해야하나.. 그래서 소비자로써 찜찜함이 늘 있었지만 상담해주시는 선생님이 너무 좋았고 그 곳에서 만족스럽게 일하고 계신것 같아서 말을 아꼈다.
지금은 상담을 종료한 상태이지만 다시 상담이 필요해지면 꼭 그 선생님과 다시 진행하고 싶었는데, 에브리마인드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면 아마 큰 장벽이 되지 않을까. 어디가 어떻게 찜찜했던건지 확실해졌다. 타인을 본인 아래로 쉽게 내려다보고 그런 태도로 내담자 또한 바라본다는 걸 알게 된 이상 편안한 마음으로 상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과연 내담자 상담내용은 확실히 보장이 되는 것인지, 언제 어떤 말도 안되는 이유로 비하/조롱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선생님과 정말 좋은 인연이였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서 너무 아쉽다.
#3-2
타인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특징 중에 하나는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통해서 우월감을 느끼고 거기에서 위로받는 것이다.
사람의 한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이렇다 저렇다 정의내릴 수는 없는 일이지만, 말 한마디에서 투명하게 비춰지는 태도나 속내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는 주제에 어쩌고" 하는 발언이 그렇다. 이 '주제'가 되는 데에는 쉽게 학력, 재력, 외모, 사회적 성공 등등이 척도가 되는데, 마치 그래도 되는 '주제'가 되면 괜찮다는 식, 본인은 남을 무시해도 되는 '주제'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다.
이렇게 비교우위에 서는 것으로 자위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인간적으로 잘 안맞는다는 생각을 넘어서 옳지 못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걸 필터링 없이 다 표현해내는건 더 옳지 않은 일일 것이다. 감정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지만, 발화된 언어는 반드시 누군가에게 가 닿기 때문이다. 자기자신의 못난 감정들을 인정하는 일은 정신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일 일지언정, 정제되고 상처주지 않는 언어를 쓰는 것이 어른 아닐까. 추측컨데 본인들은 잘 의식이 안되는 것 같다.
#3-3
사회적으로 접근을 해보자면 세상에는 계층이 있고, 아래 위가 있고, 우월과 열등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대부분 노예계급이고, 어떤 종류의 노동을 하고 노동의 댓가를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노예 계급 안에서 또 계층이 생긴다. 그래 뭐, 그게 현실이고 팩트다. 그리고 이 팩트를 받아들이는 스탠스에는 크게 두가지 다른 방향성이 있다.
첫번째, 팩트가 그러하니 어떻게든 상위 계층으로 올라가야하고, 그 과정에서 하위 계층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며 상위 계층으로 갔을 때 하위계층을 무시하고 컨트롤 하는 것은 상위계층의 특권이다. 상위계층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 결코 쉽지 않으므로 그에 대한 보상은 당연하다는 스탠스.
두번째, 사회가 그런식으로 굴러가고 있지만 이 상하관계가 합리적인 시스템 안에서 결정되지 않기 때문에 그걸 합리적, 또 평등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앞으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며 계층과는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존중되어야 한다는 스탠스.
개인적으로 첫번째 경우는 너무 1차원 적이기도 하고 인생을 길게 두고 봤을 때 아무리 기득권이여도 저 스탠스를 유지하는 것이 과연 이득인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놀라울 정도로 세상에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존나.. 많다..
사회시스템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 자본주의가 자연의 섭리처럼 받아들여지는 것도 짜증난다. 구멍이 많은 시스템인데 발전/대안을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수용하고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다.
#3-4
심리적인 관점으로 보면 열등감과 인정욕구가 강한사람들이 저런식(남을 깎아내리면서 비교우위에 서는 것)의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것 같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꽤 친하게 지냈던 사람중에도 저런 사람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그에게서 '돕는 나'가 '너보다 나음'이라는 우월감으로 자위하는 모습을 자주 투명하게 보여줘서 좀 불편했었다. 늘 고마운 사람이였지만 그 대가로 미묘한 무례함을 자주 감당해야 했다. 의도적으로 그랬다는 느낌은 없었고 그냥 그게 그가 인생을 대하는 방식으로 이미 깊게 자리잡은 것 같았다. 친구로써 이야기도 많이 했다보니 그의 이런저런 사정도 알고 좋은 마음이 있다는 것도 알아서 사람자체가 나쁘다는 생각은 안했지만 좀 위험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던건 어쩔 수 없었다. 가끔 선을 넘는다 싶을 때는 참지 않고 불편하다고 말을 했었는데, 그게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서로 연락하지 않게 되었다.
비교우위에 서고 싶다는 욕구 자체가 열등감으로 부터 출발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는 감정이 열등감이 된 데에는 각자의 사정과 역사가 있겠지. 그 사람들이 실제로 정말 열등하거나 우월한 것과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 그냥 마음의 문제인 듯. 나도 사람이라 열등감을 느낄 때도 있고 남 깎아내리고 싶은 못난마음 들 때도 있다. ㅡ인간이 그렇게 고결할 수 없다는 것도 요즘 천천히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렇지만 똥밭에 있다고 똥처럼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마음 속으로만 똥같은 생각 하고 말로 나오지 않게 조심해야지. 생각도 고쳐먹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ㅡ 하지만 특별히 강하게 올라오는 감정이 열등감은 아닌 것 같다.
각자에게 유난한 감정이 있는거겠지. 나한테는 또 다른 유난하고 힘든 감정과 방어기제들이 있다. 인생도 인간도 단편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고 너무 다각적이고 입체적이라는 것을 요즘 많이 느낀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걸 이해한 이후로 인간관계를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은 점점 단순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3-5
나는 열등하다는 것을 이유로 들면서 인간적인 존중을 받지 못할 때 감정이 강하게 올라온다. 왜냐하면 그건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열등하고 못날 수 있다는 것을, 나보다 잘나고 우월한 사람은 늘 언제나 평생 세상에 넘쳐날 거라는걸 아주 잘 안다. 너무 당연해서 열등한 나에 대한 연민 조차 없다. 나보다 잘난 사람들 그냥 우와 하는 정도로 부럽고, 나는 내 자리에서 열심히 살면 되고, 내가 열등한게 뭐가 어때서 싶다. ㅡ인정 욕구도 사회적 기준으로 뭘 더 잘하거나 우위에 올랐다는 이유로 인정받는 일 보다, 나의 특별함이나 고유성을 발견해주고 좋게 봐줄 때 더 기쁘고 인정받은 느낌을 받는다.ㅡ
그러나 우리가 타인이 열등하다는 이유로 존중하지 않아도 되나? 당연히 아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너보다 조금 못한 그 사람들도 포함해서 전부 다 인간적으로 존중해야한다. 열등한 인생이라고 결코 덜 중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각자의 인생은 각자에게 가장 중요하고 고귀한 것이다.
근데 살면서 그렇지 못한 일 정말 자주 보고 겪게 되고, 이런 당연함도 늘 설명해야 하며,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정말 괴롭다. 어떻게 대처하고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참 고민이다. 이걸 고민해야하는게 나인것도 억울하다. 억울하지만 내가 편하고 성숙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려면 또 고민 하는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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