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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회고
    날들/1 년이 지남 2023. 1. 9. 16:39

    갈수록 한해가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올해도 여느때 처럼 오르락 내리락은 있었지만 비교적 큰 변화 없이 무탈하게 지나갔다.

    # 한국
    코로나로 인한 여러가지 제약들이 풀려서 그동안 여러번 취소되었던 여행을 좀 다녔다. 올해 이스터 때는 코로나 전 여느때처럼 멜번을 갔고, 8월엔 케언즈도 또 갔다. 그리고 무려 5년 만에 한국을 갔다. 5년 전에도 아주 잠깐 다녀온거라 거의 6년 만에 갔다고 해도 무방할 듯 싶다.

    6년, 뭔가 잊혀지기에도 기억되기에도 애매한듯한 세월인데 기억되는 일이란 몇해가 지났는가와는 또 하등 상관 없는 것 같았다. 별 노력없이 기억된 시간들이 친구들의 입을 빌어 대화 중간 불쑥불쑥 등장했다. 스치는듯한 이야기였지만, 실은 내가 잊으면 없던 일이 되버리는 날들이라 친구들의 증언을 통해 실재했던 삶으로, 실존했던 나로 지난 삶이 증명되는 듯 했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10대 20대에 자아정체성이 자리잡기 시작했는데, 호주에는 그 때의 기억을 공유한 사람이 없다보니 그 때의 삶이 통째로, 조금 오바하면 내 정체성이 흐려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가령 호주에서 내가 완전히 다른사람처럼 연기하며 살아도 아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원래의 나를 아무도 모르니까. 한국에서는 내가 답지 않게 굴면 오히려 중심을 잡아주는 친구들이 있다. 서로의 역사를 나눈 관계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꼈다.

    결이 같다는 게 이런거였지- 이런 대화를 내가 참 그리워했지- 느끼는 순간이 참 많았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립지도 않던 결핍이 한 번 가득 채워지니 다시 선명해졌다. 두달간 짬내서 만난 친구들과의 그리 길지도 않았던 대화를 통해 간만에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을 했고, 나는 사유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에 의해 성장해온 사람임을 다시 느꼈다. 이런 친구들은 세상을 보는 관점도 내 자신을 들여다보는 깊이도 더 다양하게 탐험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오랜만에 뇌가 여러방향으로 자극받는 느낌이였고 고민할 거리도 많이 생겼다.

    예를 들면, 어떻게 살 것인가.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좀 던져볼 수 있었다. 먹고 사는 것 이후의 가치들을 추구하기 위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는데, 호주에서는 그 단순한 문제가 해결된 편안함에 안주하는 삶을 살고있다. ㅡ물론 이걸 해결하는 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고 숱한 개고생이 있었다.ㅡ 이렇게 편안하게 사는게 나쁜건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는 멍청하거나 천박하다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없이 사는것에 대해 이상한 불편감을 느끼면서도 뭘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한국에서 친구들과 먹고 사는 것과 관계없는 주제로 이야기를 길고 깊게하니 오랜만에 내가 있어야 할 딱 맞는 초대된 자리에 앉아있는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아이러니했다. 한국에서 나답게 살지 못하는 게 답답해서 떠났는데, 호주에서도 또 똑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니. 그 맥락과 내용이 다를 뿐이였다. 어디에도 천국은 없다더니.

    아무튼.. 대화도 즐겁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그 어느 때보다 편안했다. 오랜만에 한국에 온 나를 위해 감사하게도 친구들이 배려해 준 덕분이겠지만. 그에 앞서 친구들에게 배려할 만한 여유가 생겼다는 게 많이 느껴져서 더 좋았다. 20대에 미래에 대한 불안을 나누던 친구들과 나는 이제 각자가 일궈낸 안정된 상황과 여유로운 시간을 서로 기특해하는 30대가 되었다. 다들 나름의 행복을 찾아 잘 살고있어서 기뻤다. 물론 그동안 고생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런 시간들을 옆에서 함께 위로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고 지금도 나름대로의 고충들이 있겠지만 결국엔 잘 해낸 또 해낼 친구들이 대단하다. 전반적으로 이전에 비해 한결 편하게 잘 지내고 있어서 정말 좋다.

    앞으로는 한국에 더 자주 주기적으로 방문 해야겠다. 한국도 호주도 내집같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둘 다 내가 돌아가도 좋을 곳 처럼 느껴진다.


    #회사생활

    회사에서는 좀 불안한 시간들이 있었다. 배울 점이 정말 많았던 프로덕치프가 개인사정으로 회사를 나간 것도 나에게는 꽤나 큰 손실이였고, 리세션 때문에 적지않은 동료들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비자를 스폰받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회사 잘리면 호주에 남아있기도 곤란해지기 때문에 자주 불안했다. 그래도 부사장이 그런시기마다 오히려 다른 잡 알아보고 있는 거 아니지..? 해줘서 다행이였지만..

    최근에는 영주권 비자도 회사 스폰을 통해 지원했다. 비자 신청에 드는 비용까지 감사하게도 전부 지원받았다. 나중에 영수증 보니 비용이 만만치 않던데.. 회사 측에서도 나름 투자한 셈이니 뽕 뽑을때까진 나를 쓰지 않을까 싶다. 현재 디자인 인력이 모자라기도 하고.. job security에 대한 걱정은 당분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과 동시에 경기가 금방 좋아질기미는 아니라 또 준비는 해둬야지 싶고..(한숨) 새해에는 포폴 사이트 좀 정비해야할 듯.

    이번 한해는 다음스텝을 어떻게 가는게 좋을지 고민해봐야겠다. 대기업으로의 이직을 도전해볼까, 컨트랙 잡을 하면서 노마드를 해볼까, 지금처럼 적당한 회사로 또 이직을 하게 될지, 현직장에서 승진을 노려볼지.. 뭔가 변화를 좀 주고싶다는 생각은 분명한 것 같다. 그냥 비지니스 말고, 정말로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일하는게 베스트겠지만 당장은 머리에 뭐가 선명하게 그려지진 않는다. 예전에는 환경 관련이나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많았는데 어쩌다보니 그런 쪽으로 직업적으로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한동안 미뤄온듯. 어쨌든 비자 결과 나오길 기다리는게 한 세월 걸릴테니.. 천천히 생각해보고 준비해봐야겠다.


    # 올해의 ~~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한국에 갔을 때 항상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그룹이 있는데, 그 중 한명이 강추를 해서 한국에서 봤다. 영화관에서 본 탓에 약간 멀미가 나기도 했던 영화. 캐릭터들이 각자 다르게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태도에 전부 공감하면서 봤더니 그 입장이 변할 때마다 내 마음도 혼란했다. 다들 그런 다양한 입장을 다들 마음속에 조금씩은 품고 살텐데, 그런 점을 잘 노린 것 같다. 누구나 잠깐 했을 법한 생각이나 공감했을 법한 사상들을 극대화 시킨 캐릭터들 이였다. 시각적, 음향적으로 효과를 너무 잘 내서 혼란함도 먹먹함도 따스함도 역시나 극대화된 감정으오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었다. 오랜만에 어디서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한 것 같아서 신선했다. 영화 본 이후로도 친구들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양자역학, 평행우주, 무한대 등등 이런저런 물리학에 대해 이해하려고 애써보기도 했다(이해못함). 너무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영화 한 편에 다 버무려놔서 다 보고나면 내가 뭘 본거지 싶은 영화. 너무 좋은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감상이 버거워서 다시 볼 마음은 안 먹어지는 영화다.

    공연: Jacob Collier
    한 때 정말 빠져서 앨범 무한반복에 공연 영상, 인터뷰 영상 다 찾아다니면서 봤었던 제이콥 콜리어.. 그 천진난만한 에너지와 천재적 재능을 실제로 보니 너무 행복했고 그 특유의 영국 악센트까지 너무 귀여워하며 감상했다. 몇년 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하는 걸 놓쳤던게 천추의 한 이였는데 이번에 풀었다. 이번엔 좀 작은 공연장이여서 조금 일찍 갔었으면 좀 더 앞에서 실감나게 볼 수 있었을텐데, 코로나 시절 한가한 공연장 생각하고 천천히 갔다가 거의 맨 뒤에서 본 게 좀 아쉬웠다.

    전시: 서도호
    시드니 MCA에서 서도호 전시 한다고 예정 할 때부터 너무나도 기다렸던 전시. 예전에 서울 MMCA 집속의 집 봤을 때도 인상 깊었는데 서도호 개인전을 시드니에서 보게 된다니 마음이 벅찼다. 마침 먼저 갔던 친구가 한국말 가이드 있을때 꼭 가보라고 추천해줘서 또 다른 한국인 친구랑 날짜를 맞춰서 갔는데 정말 가이드 따라가길 잘한 듯. 스케일에서 오는 임팩트가 컸지만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마음이나 접근방법들이 adorable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서울집 프로젝트는 그 작업과정이나 작업하는 동안 가족들과의 스토리가 따뜻하고 사랑스러웠다. 가이드의 설명 덕분에 더더욱 이런 인상을 받은듯.

    한국에 있는 동안에도 전시를 몇개 봤는데 MMCA에서 하고 있었던 최우람 작가 전시도 좋았다. 특히 <원탁>은 오랜만에 직관적으로 감정이 동하는 작품이였다. 가장 최근에는 Art Gallery of NSW의 새로 생긴 빌딩도 갔다왔는데, 김수자 작가 작품 참여하면서도 명상하는것 같아 참 좋았고.. 2022년은 한국에서나 호주에서나 한국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감동하는 한 해를 보냈다.


    #신체건강
    여느때처럼 꾸준히 운동을 시도했지만 또 게으른 시간을 보내기도 한 1년이였다.

    볼더링은 계속 하고있지만 여전히 on and off 하기 때문에 실력은 그대로이다. 볼더링 하다보면 주변사람들이 자꾸만 top rope도 같이 하자고 하는데 그건 정말 마음이 안간다.. 너무 높아서 위험해보이고 왜 하는지 모르겠는거 보면 볼더링도 스릴을 즐기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볼더링이 퍼즐푸는거같아서 재미있고, 충분히 근력을 써서 땀도 나고, 한 문제 풀 때마다 아드레날린 팡팡 터지니 좋다. 그리고 내 성격에 딱 적당한 수준으로 소셜라이즈 하기도 좋아서 정말 이보다 나랑 더 잘 맞는 스포츠가 있을까 싶다. 볼더링 너무나 사랑..

    그리고 처음 도전해본 운동은 달리기다. 달리기가 좋다는 말은 항상 들었지만 난 유산소 운동을 정말 안좋아해서 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갑자기 무슨바람이 들어서 달리기 시작했는지 동기조차 기억나지 않네... 그냥 갑자기 런데이 앱 깔아서 시작했다. 앱이 가이드를 진짜 잘해줘서 이거 뭐여 웃기네ㅋㅋ.. 하면서 집 근처에 센테니얼파크에서 열심히 뛰었다. 조금 꾸준히 하다가 어느새 다시 이것도 on and off 모드로 갔지만, 어쨌든 시작한 이후로 종종 달리고 싶다!라는 마음이 드는게 나에게 생긴 변화이다.

    웨이트는 아파트에 짐이 딸려있어서 거기서 좀 하다가 어느샌가 집에 아령과 밴드를 마련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비가 많이 오던 시즌에 짐에 갈 마음이 안생기면 집에서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샀는데 진짜 '그나마' 하는 정도에 그치는 듯.

    2022년에는 근력을 유의미하게 올려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냥 lose/gain을 반복하며 유지만 하는 상태이다. 체중변화는 크지 않은 편이라 거의 신경을 안쓰는 편인데 한국에 갔다오니 제법 늘었다. 보통 평소보다 더 먹어서 찐 살은 평소처럼 먹으면 다시 자연스럽게 돌아오는데 이제 나잇살이 찌는건지 완전하게 돌아오진 않는다 ^_ㅠ.. 운동량이나 식사량은 늘 비슷한데 진짜 찔끔찔끔 조금씩 평균체중이 느는 듯. 그래도 아직 막 급격하게 몸의 변화나 노화를 경험하는 단계는 아닌 것 같다. 2023년은 22년에 이루지 못한 근력늘리기를 다시 목표로 해본다.

    한국에서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별 문제 없었다. 그리고 딱히 나아진 점도 없음.. 위는 여전히 개복치고.. 허리도 사진찍으니 역시나 문제가 조금 있어서 도수치료도 조금 받고 왔다. 이런저런 교정운동을 배워왔는데 좀 꾸준히 할 수 있기를..


    #정신건강

    한국에 있는동안 정말 해보고싶었던 ADHD 검사를 받았다.. 10대일때부터 의심했었는데 최근엔 미디어에서 자주 보여서 꼭 다시 한번 검사를 해보고 싶었다. 증상이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정도는 아니였지만,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면서 점점 조절이 안되는 느낌이여서 진단이 나오면 약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진단 결과로는.. 치료가 필수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본인이 일상생활을 유지하는데 불편감을 많이 느끼면 치료를 해도 좋을정도 라고 아주 애매하게 나왔다 ㅋ..

    ADHD 증상이 병과 성격 그 사이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듯. 대개 ADHD 환자들은 진단받으면서 자기수용과 함께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던데 나는 딱히 그런 느낌은 아니였다. 진단받기 전부터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었어서 그런가..나는 게으르고 계획을 잘 지키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별로 미워한적도, 박하게 다그친 적도 없다. 남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원래 다들 작심삼일 하는거 아님? 헤헤..' 하는 느낌으로 살아왔고, 결국 막판에 몰아쳐서 처리한 일들의 결과가 운 좋게도 나쁘지 않았어서 그랬나싶다. 오히려 게으르게 했는데도 이 정도면 선방했다-의 느낌으로 사는 것 같다..ㅋ ㅡ대체로 느긋한 호주에서 살아서 그럴수도 있다. 한국에서 살았다면 갓생사는 사람들 틈에서 자기혐오에 시달렸을지도..ㅡ

    물론 더 열심히 했으면 더 많은 성취와 성과를 이뤘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있고, 계획적으로 열심히 사는 친구들 보면 너무 대단하고 부럽다. 하지만 그것도 금수저 친구를 부러워하는 정도지 뭐 나는 왜 저렇게 못할까..까지 가진 않는 것 같다. 나의 의지박약은 컨트롤되지 않는 부분이라는 걸 수능공부 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의지를 다져보는 것은 그저 구호외침일 뿐 그 어떤 실질적인 변화도 가져오지 못했고, 항상 환경조성을 통해 나의 뇌를 속여서 놀이 혹은 습관을 만드는 방식으로 하던가 아니면 그냥 막판에 꾸역꾸역 하는게 내 방식이였다.

    문제는 뭔가 인생에 중요한 큰 사건 처리할 때에도 미룬다는 것인데.. 최근에 영주권 진행을 미루면서 매우 마음을 졸였다... 이럴때는 거의 병에 가까운 정도인듯. 약복용을 간헐적으로 해도 된다면 이런 중요한 일 있을 때만 복용하고 싶은데 리서치 해보니 또 그런식으로 복용하는건 아닌 것 같더라. 부작용의 리스크도 있고.. 그래서 당장 약복용은 미루고있다.

    날씨에 따라 기분이 많이 좌우되는 것도 고민이고, 핸드폰 너무 오래 붙잡고 있는것도 도파민 패턴 망가진듯한 느낌 받는데 해결방법은 아직 찾는중이다. 최근에는 비슷한 고민하는 친구들과 일일 체크리스트를 공유하며 서로 일상에 루틴을 유지해보려고 노력하고있는게 첫번째 시도인데 뭐.. 다들 잘 못하지만 시도해보는 서로를 응원하는 것만 해도 힘이 된다 ㅋㅋ 1년 동안 여러가지 방법 시도해보면서 조금의 개선이라도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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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NO-G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