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2023/ 3-4월
    날들/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2023. 4. 29. 23:36

    #1 멜번 

     

    3월에 뭐했는지 모르겠고.. 4월 초에 멜번에 갔다왔다. 코비드기간 빼고는 매년 이스터 홀리데이에 3-4일정도 멜번을 놀러갔는데 이번에는 이사 시기도 대충 맞아서 멜번으로 이사를 고려해볼까 하고 2주로 일정을 길게 잡고 갔다왔다. 

     

    난 처음에 호주에 왔을때 멜번으로 들어왔다. 멜번에서 6개월을 살고 직장 때문에 시드니로 와서 6년을 살았다. 10배나 더 되는 시간을 시드니에 살면서도 멜번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는건 분명한 이유가 있겠지 싶어서 직접 가서 다시 경험하고 싶었다. 뭐가 나를 이렇게 질척이게 만드는지..ㅋㅋ 그리고 영주권이 나오면 집을 구매할 생각을 하고있기 때문에 지금쯤 멜번을 다시 고려해보고 싶기도 했다. 호주에 정착하고 싶은건 맞지만 시드니가 내가 정말 정착하고 싶은 도시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멜번에서 2주 지내고 오니, 결론부터 말하지만 멜번으로 다시 가야겠다고 마음이 많이 기울었다. 시드니에 사는 나 보다 멜번에 사는 내가 훨씬 더 나답게, 나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2 멜번이 더 좋아 1_재미

     

    멜번에서 내가 느끼는 매력은 다양성과 자유로움, 사람들의 개방성이다. 100년된 레시피로 치즈케잌을 만드는 베이커리, 특정 장르의 음악으로만 특화된 바와 클럽들(특히 내가 좋아하는 재즈와 힙합, 디스코까지!!), 로컬 패션 브랜드들과 소품샵, 빈티지 가구점, 시드니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내가 좋아하는 식물이 가득한 화원들과 로컬 뮤지션들의 앨범을 파는 바이닐 샵들이 즐비어져 있는 스트릿들.. 멜번은 거기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과 성격, 특성들이 도시를 이룬다. 

     

    나는 나의 일상을 그런것들로 향유하면서 채우며 살고싶다. 그게 나의 놀이이고 재미이다. 나한테 재미는 인생에서 엄청 중요한 요소다. 가난해서 먹고 살 걱정하면서 살 때도 돈 안드는 재미 찾으면서 살았다. 시드니에서는 돈이 있어도 놀게 없어서 못놀면서.. 내 취향을 지키고 확장시키는 일이 알게 모르게 정지에 가까울 정도로 느려졌다.

     

    2019년에 취향에 대해 쓴 일기를 다시 봤는데 그때도 같은 고민 하고있었더라. 재미없게 사는데 익숙해지지도 않는걸 보면 이런 목마름이 쉽게 없어지진 않을 것 같다. 항상 취미가 너무 많아서 걱정이였던 내가 시드니와서 이렇게 재미없게 사는거 보면 진짜 아니긴 아닌가보다. 

     

    시드니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대기업 브랜드와 상업화된 가게들 뿐이라 온 도시가 gentrified된 동네같다. 요즘 매릭빌이 좀 흥미로워지긴 하는거 같은데.. 멜번의 피츠로이, 콜링우드,프라한과 비교할 바가 안되더라.

     

    취향을 유지하려면 많은 옵션들 가운데 내가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어야 하는데 시드니는 그게 안된다. 멜번은 재즈바도 바이닐샵도 빈티지 가구점도 각 10-20군데씩 찾아지는데 시드니는 3-4개 찾아지면 많은거라 그 중에 맘에 드는데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으면 갈 곳없는 신세. 점점 더 집순이가 된다..

     

     

    #3 멜번이 더 좋아 2_사람들

     

    멜번에 있는 2주동안 정말 즐거운 사람들과의 인터랙션이 많았다. 이건 6년 전 멜번에 살았을 때도 느꼈던 건데 다시한번 느끼니 확신으로 바뀌었다. 친구 모임에 초대받아 같이 여러 바들을 돌아다니면서 춤추고 마시며 놀았는데 그 하루밤동안 정말 여러 사람을 만나서 웃고 떠들고 같이 춤을 추고 놀았다. 새벽에 숙소로 들어와 곯아 떨어졌지만 다음날 늦잠 자고 일어나서 아.. 미쳤네.. 어제 정말 재밌었다.. 라고 느낀건 정말 오랜만이였다!

     

    멜번에서 시드니로 돌아오고 또 친구에게 초대받아 파티를 갔었는데 정말 대조되는 경험이였다..ㅋ 친구와는 재밌게 잘 놀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안보이나? 나 투명인간인가? 가끔은 무례하다고 느낄 정도로 무시당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사실 처음도 아닌데 멜번에 갔다온 직후에 다시 경험해서 그런지 별 일도 없었는데도 정 떨어졌다..ㅋㅋㅋ 이런 밤은 집에 공허한 마음으로 터덜터덜 들어오는데 이 느낌이 정말 싫다..

     

    멜번은 대체로 칫챗이 많다. 그냥 길에 있을때나 대중교통 안에서도, 카페에서도, 상점 안에서도 멜번사람들과의 칫챗은 즐겁다. 시드니도 칫챗이 없는건 아니지만.. 시드니는 예의상 몇 마디 하는 느낌이 지배적이고, 뭔가 대화를 시작하려고 하면 '왜 말을걸지..?' 라고 속으로 생각하는게 보여서 나도 마음이 많이 소심해진지 오래다. 다른 친구들도 제법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속상함을 토로하기도 하기도 하고, 로컬 친구와 이야기해봐도 시드니가 문화적으로 폐쇄적이라는 의견이 있는거 보면 시드니 특성인 것도 없진 않은거 같다. 

     

    멜번 사람들은 어느정도의 호기심을 가지고 일회성 대화라도 그 순간을 정말 즐기면서 대화하는 느낌이다. 나의 느낌적인 느낌뿐이지만.. 어쨌든 내 느낌이 중요한거 아니겠나. 난 10대 20대를 친구들 틈바구니 속에서, 그걸 또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커넥션없이 사는것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한국에서의 친구관계같은 걸 멜번에서 기대하는건 아니지만 불특정 다수와 잠깐이여도 다정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곳에서 살고싶다.

     

    이건 멜번의 특성과 내가 멜번에서 가지는 애티튜드의 합이 잘 맞는 점도 있을 것 같다. 멜번의 친구들과 대화해보면 모두에게 이렇게 불특정 다수와의 인터랙션이 자주 일어나진 않는거 같더라. 난 기본적으로 멜번에서는 누구도 '왜 나한테 말을걸지?'라고 생각하지 않을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대화를 받아주는것도 편하고 내가 말 거는 것도 편하다. 그런 느낌을 다른사람도 느끼기 때문에 나한테 쉽게 말을 거는 거겠지..?

     

     

    #4 시드니도 좋긴 하지

     

    6년이나 시드니에 산게 아쉽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시드니였기 때문에 호주에서의 첫 직장도, 이직도 순조롭게 이루어졌을꺼라고 생각한다. 시드니가 회사도 많고 기회도 훨씬 많다. 첫 경력을 쌓기 위해 시드니에 온 건 백번 잘 한 결정이였고 그게 1순위였다. 지금은 경력도 어느정도 쌓이고 영주권도 기다리고 있는 입장에서 멜번에서도 직장을 잡는게 그렇게 어렵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을 가보고싶은 욕심이 있어서 글로벌 회사들 사무실이 모여있는 시드니를 떠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멜번에 갔다오고나서 마음이 바뀌었다. 연봉이나 회사컬쳐는 여전히 중요하고, 직업이 내 정체성을 주는 요소인 것도 여전하지만.. 멜번에서도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계속 일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것 같다. 물론 그 안에서 리드나 매니저로 커리어를 쌓는 건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대기업 가는게 직장 밖 재미를 포기할 정도로 나에게 중요한 이슈는 아닌 것 같다.

     

    시드니의 좋은 날씨와 큰 공원들, 여름의 해변들을 생각하면 떠날 것이 조금 아쉬울 것 같기도 하다.. 덕분에 2년의 코비드 기간동안에도 탁 트인 공원에서의 산책을 하며 덜 답답하게 지낼 수 있었다. 바다도 스노쿨링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너무 아쉽겠지만 어차피 바다를 가는건 여름 뿐이라. 멜번에서 일상을 살고, 시드니에 1년에 한번씩 여름에 놀러와서 즐기는게 밸런스가 더 좋을 것 같다.

     

    시드니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내 우선순위에 따라 내가 선택한 환경이고 원하는 걸 원하는 만큼 얻었다. 이제는 또 바뀐 우선순위를 따라 내가 원하는 걸 찾아가야지..!

     

     

    #5 이사

     

    멜번으로 이렇게 가고싶은 마음이 가득한데도 당장 이사를 결정하지 못한 이유는 그냥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이사할 작정으로 멜번에서 일주일 정도 원베드룸 아파트 인스펙션을 정말정말 많이 다녔는데, 마음에 드는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시드니에 비해서 원베드룸 아파트들 면적이 너무 작고 뷰도 너무 심하게 벽에 막혀있는 곳이 많더라. 이유를 알 수가 없네. 가격이 꽤 나가는데도 원베드 아파트는 뷰가 다 망했다.

     

    좀 괜찮다 싶은 유닛을 발견하면 동네가 너무 위험해보였다. 예전에 멜번에 살 때는 시티 한복판에 살아서 몰랐는데 CBD 밖으로 나가니까 또 시드니랑 다르게 제법 위험해보이는 스트릿이 많더라. 시드니는 우범지역이라 여겨지는 동네만 안가면 대체로 무척 깔끔하고 안전한 느낌인데, 멜번은 같은 동네여도 블럭 하나만 지나면 위험한 스트릿이 나오고 또 그 스트릿만 벗어나면 괜찮아지고 그런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나로써는 지도 따라 걷다가 어떤 골목에 들어서면 갑자기 불안하고 무섭고 그랬다.

     

    멜번으로 이사하려면 더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집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난 동네도 집 컨디션도 너무 중요하다.. 난 왜 이렇게 중요한게 많고 포기할 수 없는게 많아서 에너지를 많이 들이는지.. ^_ㅠ .. 행복한 나 가 너무 중요한걸 어쩌나..! 

     

    아무튼 그렇게 멜번에서 집 찾는데 실패하고 시드니로 돌아와서는.. 그냥 신께서 지금은 시드니에 있으라는 것 처럼 쉐어메이트도, 집도 너무나 쉽게 한번에 찾아졌다. 때 마침 친구의 쉐어메이트가 이사를 나가게 되면서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섣불리 그러자!고 했다가 이런저런 집의 조건때문에 하루만에 마음을 바꾸어서 친구에게 무척 미안한 상황도 있었다.ㅠ

     

    우당탕탕 여러 일들을 거쳐서 새로 이사가게 될 집은 같은 동네 거의 옆 건물이다. 시티와 약간 떨어져 있어서 조용하지만 버스로 쉽게 갈 수 있는 거리고, 동네에 큰 공원도 있고 대부분의 필수적인 인프라가 다 갖춰져 있는 안전한 동네라 정을 붙히고 오래 살고있다. 

     

    이 동네 집값이 너무 올라서 더 이상 혼자 사는건 불가능해서 투룸을 구했고, 온라인으로 찾은 쉐어메이트랑 둘이 살기로 했다. 사실 혼자 사는데 만족감이 큰 데다가 어차피 재택근무하니 좀 시티와 거리가 있는 곳으로 이사해볼까 생각도 했는데, 시드니 집값이 전체적으로 많이 올라서.. 뭐 큰 의미 없더라. 어차피 쉐어하면서 지금 혼자 살던 가격보다는 약간 더 저렴해지긴 하다..너무 약간이지만..

     

    예전에 통창이 있는 방에서 매일 지는 노을을 보며 무척 만족스럽게 살았던 경험이 있는데, 그와 비슷한 아파트가 있어서 큰 고민없이 결정했다. 복층이라 거실에서는 엄청나게 높은 천장과 북향의 따스한 햇살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호주는 남반구라 북향이 해가 잘든다)

     

    이사가 스트레스인 한 편 이런건 또 설렘으로 다가온다. 그래.. 이런 설렘도 있어야 이사할 맛도 나지..

     

    아무튼 그래서 당분간은 시드니에서 계속 일하고, 일 끝나면 운동하고.. 재미없고 건강한 삶을 유지할 것 같다 ㅋㅋㅋㅋ

    당장은 영주권 기다리면서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지내면 될것 같다. 이직준비도 하고, 멜번으로의 이사준비도 하고, 집 살 궁리도 하고.. 그러다보면 또 내가 나를 더 행복한 곳으로 또 데려가겠지! 

     

     

    '날들 >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 1-2월  (1) 2023.02.26
    성장에 대한 일종의 담보  (0) 2021.05.09
    호주에서 재태크 시작하기  (0) 2019.12.14
    유럽을 가보자 (여행계획)  (0) 2019.12.11
    마음돌봄  (0) 2019.12.11

    댓글

Written by NO-G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