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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하는 삶의 모양2
    날들/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2024. 8. 24. 21:58

    생각이란걸 너무 안하고 살았다. 어떻게 살아야하나. 살아지는대로 흘러왔더니 어디로 가고있는지도 모르는 상태.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라는 어디선가 본 문구를 어릴 때 아주 오랫동안 좋아했는데. 잊고 살다보니 아주 딱 가장 싫은 그런 상태가 되어버렸네. Mid-life crisis 벌써 오는건지..? 사춘기 오춘기 끝난지 얼마 안된거 같은데.. 흑

     

    난 내 인생 주체적으로 살아온 줄 알았는데 막상 돌아보니 모르겠다. 싫은 것들은 가지치기하고 피하는 식으로 살았더니 지나온 삶이 나쁘진 않지만 방향성이 없네. 사실 없는대로 사는 것도 괜찮았는데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싫은 걸 피할 수 없을 때 대처가 잘 안되고 타격도 크게 받는 것.. 회복탄력성 꾸준히 낮아지는 중이다. 별 일 아닌 일에도 그냥 일주일씩 앓아 누워버려.. 성장하는 일에 신경쓰지 않으면 그냥 낡아지는 과정만 남나보다. 

     

    난 그냥 하루하루 단순하고 행복하게 살고싶은데, 막상 그런 단순하고 평온한 매일매일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생각을 좀 할 필요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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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자신을 안전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늘 우선순위로 가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상적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이는건 우선순위를 고려하고 결정한 가치라기보다는 생존과제에 더 가까워서 선택의 여지가 없음. 선천적 후천적으로 고민감성 인간(Highly sensetive person)의 몸뚱이라 사는게 너무 힘들다. 한국에 있으니까 정말 얼마나 힘든지 다시 알겠어. 호주에 있는 동안 이걸 잊고 살 수 있을 정도로 편했구나 싶다. 

     

    가지고 태어난 성향 자체가 그렇다보니 싫은걸 가지치기하는 식으로 살아오는 방식을 택했던 것이 필연적이였다는 생각도 든다. 견디지 못하는 것들을 피하고 피하다보니 호주까지 간듯. 물론 호주에 산다고 일상적 스트레스가 없는건 당연히 아니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이방인으로 살면서 매일매일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생존모드로 살아야하는 시기가 한동안 있었지만, 훨씬 낮은 강도의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그것도 여러가지인데,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타당성과 예측되는 극복 가능성 때문인 것 같다. 누가 떠민 것도 아니고 내가 혼자 티켓 끊고 날아가서 호주에서 살겠다고 했으니 언어나 문화차이, 외로움 때문에 오는 스트레스정도는 아무리 답답하고 힘들어도 스스로 납득이 되는 요인들이였다. 기꺼이 그걸 견뎌서 얻고자 하는게 있으니 그냥 저냥 견딘듯.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편안한 수준으로 극복이 될거라고 어렵지 않게 예측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시간이 지나니 옛날에 비하면 훨씬 편해지기도 했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성취감이 섞여있었던 것도 스트레스 강도가 낮게 느껴졌던 이유가 될 수 있겠다. ㅡ 정말 낮았나..? 싶으면 개같이 고생할 적도 있긴 했음 ㅡ 

     

    그에 비하면 한국에서는 뭔가.. 난 가만히 있는데 난데없이 모르는사람이 와서 줘패는 느낌이라 표면적으로는 별일 아닌 것 같더라도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개억울하고 정신적 타격이 큼.. 예측도 안되고, 내가 대처를 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종류의 요인들도 아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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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에서 그냥 안전하고 단순하고 행복하게 살 때도 빠져있던 그 뭔가는 뭐였을까.. 현타랄지 매너리즘이랄지 뭔가 빠져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안전 단순한 일상을 잃어보니 뭔가 빠져있던 그게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흔들리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게 뭔지 지금 당장은 잘 모르겠음.

     

    안전한 환경이 내 유일무이의 목표였다면 지금도 그냥 취업해서 회사를 다니는게 맞겠지만, 이 정도로 '지금 그걸 하는건 아니다' 라는 느낌이 강하게 오는데는 이유가 있을것.. 안전추구하는 본능이 어느순간 관성이 되었었나 싶기도 하고. 브레이크 걸려서 돌아보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것도 뭐 실체는 없고 쌓아올릴 수 있는 각이 보이는 정도지만.

     

    지금은 또 다른 종류의 욕구가 고개를 드는 느낌이다. 이제까지 내 주변의 환경적 안전망을 쌓느라 바빴다면 이제는 내면적 내구성을 기르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편안하고 안전한 기반쌓으면 그냥 그 위에 혼자 앉아있어도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기반은 기반일뿐 인생을 풍부하게 만드는 건 아예 다른문제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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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한국에서 지내면서 마음 벅찰정도로 너무 좋은건 다시 오래된 친구들과 오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내 이야기를 하면 어딘가에 가 닿는 것. 친구들의 이야기가 노력없이 자연스레 나에게 와 닿는 것. 오랜 시간 동안의 나의 변화를 알아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 내가 희미해질 때 나를 아는 사람의 시선과 말 몇 마디로 언제 그랬냐는 듯 쉬이 다시 선명해는 것.

     

    내가 어떻게 지어졌는지 생각해보면 어쩌면 당연하지. 나는 한번도 나를 혼자 스스로 쌓아올린 적이 없네. 스스로를 혼자의 힘으로 지킬 수 없어 수많은 사람들의 보호와 고민으로 얼기설기 지어진 자아. 자기 자신을 아는 것, 자아정체성. 나 혼자만의 고뇌와 사색으로 그런걸 찾는 건 아마도 자만한 시도일 것이다. 

     

     

     "전투적이라고까지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2년 전의 널 봤을 때 분위기가 너무 달랐어. 그 때도 편해보였는데 완성된 느낌으로 행복해 보이진 않았어. 요즘의 널 보면 좀 돌아온 것 같아."

     

    "그게 무슨 도움이 되길래 궁금할까 했는데, 아, 유리였지 하니까 납득이 됐어."

     

    나는 내가 지나온 모든 시간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그 시간을 공유한 사람들이 곁에 없는채 오랜 시간을 살다보니 내가 희미해졌었나보다. 요즘 친구들이 너의 지난 시간들 중에 나는 이걸 가지고 있었단다. 하며 보여주는 것 같음.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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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NO-GONE